"당뇨병 약 끊고 싶다면 체중 감량부터"... 얼마나 빼야 효과 볼까
'살 빼는 주사'로 입소문을 타며 열풍을 일으킨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꿈의 비만약처럼 여겨지며 날이 갈수록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약의 시작은 비만이 아닌 당뇨병이었다. 혈당을 조절하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고,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는 그 과정에서 확인됐다.
뜻밖의 효과를 발견한 연구자들이 '유레카!'를 외쳤으리라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오히려 그럴 법한 결과라고 말한다. 비만과 당뇨병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질환이기 때문이다. 대한당뇨병학회 언론·홍보이사 박철영 교수(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는 두 질환을 "형과 동생 같은 관계"라고 표현한다. 몸에 지방, 특히 뱃속 내장지방이 쌓이면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이 제 역할을 못 하게 되고, 그 빈틈을 메우려 무리하던 췌장이 결국 지치면서 당뇨병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혈당을 조절하는 약이 체중을 줄이고, 체중이 줄면 혈당이 내려가는 것도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 연결고리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당뇨병 치료의 해법이 된다. 비만이 당뇨병을 불렀다면, 비만을 바로잡는 것이 당뇨병을 되돌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에게 비만과 당뇨병의 관계, 그리고 그 밀접한 관계를 이용해 건강을 되찾는 방법을 물었다.
비만과 당뇨병을 '형과 동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두 질환은 어떤 관계인가.
비만과 당뇨병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20년 전쯤 한 강의에서 외국 연자가 비만율이 증가하는 그래프와 당뇨병이 증가하는 그래프를 겹쳐 보여줬는데, 거의 똑같았다. 실제로 지금 늘고 있는 2형당뇨병은 비만도 증가와 가장 상관관계가 높은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두 질환의 공통분모는 '인슐린 저항성'이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에너지가 되어 세포로 전달돼야 제대로 쓰인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면 엔진까지 잘 전달돼야 성능이 나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에너지가 세포로 들어가려면 관문을 지나야 하고, 그 문을 여는 열쇠가 인슐린이다.
예를 들어 인슐린 1개가 포도당 10개를 세포 안으로 넣어주는 것이 정상이라 하자.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 이 효율이 떨어져 5개밖에 넣지 못한다. 몸에서는 에너지가 부족하니 인슐린을 더 만들라는 명령이 내려오고, 췌장은 인슐린을 두 배로 만든다. 이때까지만 해도 췌장이 무리해준 덕에 혈당은 정상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인슐린저항성이 점점 높아져 2.5개밖에 못 넣게 되면 췌장은 인슐린을 네 배나 만들어야 한다. 결국 어느 시점에는 췌장이 지쳐 인슐린을 만드는 능력이 떨어지고, 그때부터 혈당이 서서히 오른다. 그러다 췌장이 사실상 파업하듯 일을 멈추면 혈당이 급격히 치솟으면서 전형적인 당뇨병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이 보인다면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는 뜻이다.
같은 비만이라도 배만 나온 복부비만이 당뇨병에 더 위험하다고 들었다.
현재 비만은 체질량지수(bmi)로 진단한다. 키 대비 체중이 얼마인지를 따지는 지표인데, 몸이 건강한지를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체중이 많이 나가 체질량지수가 높지만 근육질이라 오히려 건강하다. 임신부도 체질량지수가 높지만 비만이라고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전체 무게가 아니라 지방의 양이고, 더 중요한 것은 지방이 어디에 있느냐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비만을 '몸에 비해 지방이 과도하게 쌓여 여러 불균형을 일으키는 상태'로 정의한다. 대한비만학회 역시 체질량지수로 비만을 진단한 뒤, 허리둘레를 측정해 위험도를 세분화하고 있다. 허리둘레가 곧 내장지방, 즉 복부에 지방이 얼마나 몰려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상 체중인데도 위험한 경우가 있나.
가장 속기 쉬운 것이 '정상 체중 대사이상 비만'이다. 겉으로는 정상 체중이지만 복부에 지방이 몰려 있는 상태다. 이런 분들을 자세히 인터뷰해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지금은 정상 체중이지만 예전엔 훨씬 말랐던 경우다. 키에 맞는 체중이 70kg인데 스무 살 때 56kg이었다면 14kg이 늘어난 것이고, 그 대부분은 지방으로 늘었다고 봐야 한다.
또 근육량이 적은 경우가 많아, 여성과 노년층에서 흔하다. 이분들도 체중이 늘어 불편하다는 걸 알기에 계속 살을 빼려 노력하는데, 이른바 '요요'가 반복될수록 문제가 커진다. 살이 빠질 때는 근육과 지방이 함께 빠지지만, 다시 찔 때는 지방 위주로 찌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체구성 성분은 점점 나빠진다. 그래서 단순히 체중만 볼 것이 아니라 체지방의 분포를 봐야 한다.
내장지방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길래 당뇨병과 이렇게 밀접한가.
피하지방은 굉장히 안전한 '저장 창고'다. 반면 내장지방은 몸 상태에 따라 바로바로 에너지를 꺼내 써야 하는 곳이라 불안정하고, 호르몬이 매우 활발하게 작용하는 일종의 '호르몬 샘'이라고 보면 된다.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 같은 호르몬도 나오고, 염증을 일으키는 아디포카인 같은 물질도 많이 나온다. 내장지방이 쌓이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장기가 간이다. 인슐린이 간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간이 당을 너무 많이 만들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인데,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 간이 제멋대로 당을 계속 만들어낸다. 공복혈당이 높다는 것은 간의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렇게 남는 에너지는 중성지방, 그중에서도 vldl이라는 기름 덩어리로 바뀌어 핏속을 떠다니며 미세 혈류를 점점 나쁘게 만든다. 결국 췌장 기능까지 떨어뜨리면서 혈당이 확 오르는 당뇨병으로 이어진다.
'이소성 지방'이나 '지방 독성'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이소성 지방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쌓인 지방을 말한다. 피하지방이나 내장지방도 사람에게 필요하지만, 그 양이 넘치면 간이나 췌장, 심지어 심장과 혈관에까지 지방이 쌓인다. 이런 지방은 염증을 잘 일으키는 나쁜 성질을 띨 수밖에 없다. 심장과 혈관에 쌓이면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췌장에 쌓이면 인슐린 분비 기능에 영향을 주며, 간에 쌓이면 지방간에서 지방간염, 간경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을 얼마나 빼야 약을 끊는 '관해' 상태에 이를 수 있나.
영국 뉴캐슬대학교 로이 테일러 교수는 간의 문제가 결국 췌장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트윈 사이클(twin cycle)' 가설을 제시했다. 거꾸로 말하면 체중을 줄이고 체지방을 개선하면 이 악순환의 고리가 풀리면서 췌장 기능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테일러 교수가 이끈 '다이렉트(direct) 연구'에서는 진단받은 지 6년 이내의 2형당뇨병 환자들에게 체중 감량 치료를 시행했는데, 10~15% 정도 체중을 줄인 환자들에게서 절반 가까이 관해 효과가 관찰됐다. 간과 췌장에 낀 이소성 지방이 빠지면서 췌장 기능이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연구다. 그래서 관해를 위해 10~15% 이상의 체중 감량을 권고한다.
다만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는 사람에게 무조건 10~15%를 빼라는 뜻이 아니다. 적정 체중보다 5kg 정도 더 나가는 분에게 15kg을 빼라고 할 수는 없다. 그 5kg을 지방 위주로, 질 좋은 방법으로 빼는 것이 핵심이다. 중요한 것은 체중계의 숫자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적정 체중,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의 체구성 성분이다.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비만 치료제는 당뇨병 치료에도 도움이 되나.
이 약들은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출발했다. '인크레틴'이라는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기반으로 하는데, 크게 네 가지 기전으로 작용한다. 첫째, 식사 후 인슐린 분비를 추가로 끌어올린다. 둘째, 간에서 인슐린의 작용을 개선한다. 셋째, 뇌에 작용해 포만감을 느끼게 해 덜 먹게 한다. 넷째, 위의 움직임을 늦춰 음식이 천천히 내려가게 하니 자연히 덜 먹게 된다. 이를 통해 혈당 조절과 체중 감량 효과를 함께 낸다.
다만 당뇨병 환자는 당뇨병이 없는 사람보다 체중 감소 효과가 다소 덜하다. 위고비가 약 15%, 마운자로가 약 20%의 감량 효과를 보인다면, 당뇨병 환자에서는 여기에 0.6~0.7 정도를 곱한 수준이 평균적인 감량 효과다. 그래도 혈당 개선 효과가 파격적이고 체중까지 줄일 수 있으니, 당뇨병 환자에게 굉장히 적합한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처방받을 수 있나.
위고비나 마운자로는 체질량지수 30 이상이거나, 27 이상이면서 당뇨병·고혈압·수면무호흡증 같은 동반 질환이 있을 때 쓸 수 있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약인데도 아직 건강보험으로 쓰기는 상당히 어렵다. 같은 계열인 오젬픽은 당뇨병 치료제로 들어와 보험이 적용되지만, 사용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당뇨병 환자에게 좋다고 해서 적절히 처방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대한당뇨병학회도 기준 완화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한 상태다. 미국은 최근 4년간 이 계열 약물 사용이 크게 늘면서 비만율이 드디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비만율이 줄면 이어서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암, 심혈관 질환과 그로 인한 사망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그만큼 획기적인 약이다. 초기 비용이 높더라도 많은 국민이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국민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된다.
지금 국내 가격이 비싼 것은 비급여이기 때문인데,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제도권 안으로 들여와야 오남용 문제에 대한 대책도 세울 수 있고, 가격도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
최근에는 먹는 비만 치료제도 나왔다던데?
먹는 위고비, 그리고 일라이릴리의 '오포글리프론' 같은 경구용 약물이 빠르면 국내에도 들어올 예정이다. 이 약들도 주사제와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있고, 효과는 주사제와 비슷하거나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다. 가격이 얼마로 정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오포글리프론 같은 약은 펩타이드가 아닌 '비펩타이드' 약물이라 다른 일반 약처럼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하게 공급될 가능성이 있다.
비만과 당뇨병 중 무엇이 먼저인가?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비만이 먼저다. 비만으로 과도하게 쌓인 체지방이 여러 장기에 영향을 미쳐 결국 당뇨병으로 가는 것이 가장 흔한 흐름이다. 그런데 반대로 당뇨병 환자가 비만해질 확률도 굉장히 높다. 당뇨병 치료에 쓰는 약 중에도 체중을 늘리는 약이 적지 않고, 섭취 열량이 많아지면 인슐린 용량도 계속 늘어난다. 심지어 1형당뇨병 환자 중에도 체중이 많이 나가는 분이 많다.
저혈당과 고혈당이 반복되면 저혈당 때마다 음식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쌓여 체중이 늘어난다. 당뇨병 환자는 우울증 같은 질환을 겪을 확률도 높아 체중이 늘어날 위험 요소를 여럿 안고 있다. 그런 점에서 glp-1 계열 약물은 체중을 줄이고 혈당을 개선해 이런 위험들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생활습관 관리법은?
첫째는 자기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정상 체중에 대한 기준을 잘못 알고 있다. 그래서 '적정 체중'과 '적정 허리둘레'라는 개념부터 자리 잡아야 한다. 지금 내 몸에 몇 kg이 적절하고 허리둘레는 몇 cm가 적절한지 아는 것이다. 건강검진에서 체지방까지 측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결과지를 받고는 덮어두고 보지 않는다. 그것부터 챙겨 보라는 게 첫 번째 조언이다.
둘째, 국가건강검진에도 혈당 검사는 반드시 들어가 있으니 혈당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 적정 혈당과 적정 체중, 허리둘레를 알아야 목표가 생긴다.
그다음이 생활습관 변화인데, 가장 중요한 건 먹는 것이다. 딱 한 가지만 먼저 하라고 권하는데, 바로 '간식 끊기'다. 간식은 노동 강도가 높은 일을 하는 사람, 성장기 아이들, 임신부처럼 에너지가 더 필요한 사람에게나 필요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결국 심심해서 먹는 간식이 몸을 망치고 있는 셈이다. 운동은 요즘 러닝 붐으로 열심히 하는 분도 많지만, 반대로 꼼짝도 안 하는 분도 많다. 미국당뇨병학회가 권고하는 기준은 주 150분이다. 50분씩 주 3회든, 30분씩 주 5회든 최소한 이 정도는 스케줄표에 넣어 실천해야 한다.
또 최근 중요하게 권장되는 지침이 '같은 자세로 30분 이상 있지 말라'는 것이다. 30분에 한 번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돌리거나 제자리걸음이라도 하고 다시 앉으면 된다. 업무 효율에도 훨씬 좋다.
마지막으로 당뇨병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당뇨병 진단은 자동차로 치면 운전 중에 아주 큰 경고등이 켜진 것과 같다. 그 시점에서는 큰 문제가 바로 생기진 않지만, 경고등을 무시하고 계속 달리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반드시 이 시점에서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그 다음부터 언제까지든 안전 운전, 즉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오늘 주제인 비만과 관련해 꼭 이해했으면 하는 점은, 비만이 당뇨병을 만들기도 하지만 비만을 개선하면 당뇨병을 되돌릴 가능성도 굉장히 높다는 사실이다.
진료실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있다. 당뇨병 치료제는 한 개, 두 개 늘어나는 방향만 있는 게 아니다. 하나둘씩 줄여나갈 가능성도 충분하고, 실제로 많은 분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물론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당뇨병이 생긴 원인과 조절이 안 되는 원인은 늘 같다. 그 원인을 하나씩 고쳐나가면 췌장 기능이 살아나는 만큼 약도 하나씩 덜어낼 수 있다. 인슐린을 많이 쓰던 분이 모두 끊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 자신과 마주하며 하나씩 개선해 나간다면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새로운 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