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검사 한번으로 췌장암 식별'... 한국도 참여한 실험서 초기 환자 87% 가려내
혈액검사 한 번으로 초기 췌장암을 찾아내는 검사법이 개발됐다. 미국 암 연구센터 '시티오브호프'가 이끈 연구팀은 혈액 속 여러 물질을 인공지능(ai)으로 함께 분석하는 액체생검 '팬시온(panxeon)'을 미국∙일본∙이탈리아∙한국 12개 기관 환자 1,785명에게 적용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췌장암은 발견됐을 때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조기에 잡아내는 것이 관건인데, 이 검사가 그 실마리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연구팀에 따르면 췌장암 환자 열 명 중 아홉 명(약 90%)은 암이 이미 다른 장기로 번진 뒤에야 종양이 확인된다. 그만큼 생존율도 낮다. 미국 통계 기준 진단 후 5년간 생존하는 환자는 일곱 명 중 한 명(14%)에 그친다. 국가암지식정보센터 기준 2019~2023년 5년 상대생존율이 17%로, 국내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암에 속한다.
팬시온이 기존 혈액검사와 다른 점은 한 가지 신호만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검사는 혈액을 떠도는 유전물질인 '마이크로rna' 13종과, 오래전부터 췌장암 표지자로 쓰여온 'ca19-9'라는 단백질을 함께 측정한다. 이후 ai가 이 여러 신호를 종합해 환자의 위험도를 하나의 점수로 계산한다. 여러 생체 신호를 한 검사로 묶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연구팀은 "신호 하나만으로는 이야기의 일부만 알 수 있지만 여러 신호를 합치면 췌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더 또렷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사 성능은 뚜렷했다. 팬시온은 1∙2기의 초기 췌장암 환자 86.8%를 찾아냈다. '위양성' 비율은 위험이 낮은 사람에서 3%, 높은 사람에서 16%로 낮게 유지됐다. 더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암이 되기 직전 단계까지 포착했다는 점이다. 팬시온은 '고도 이형성증'도 64.3% 찾아냈다. 고도 이형성증은 췌장 세포가 심하게 변형됐지만 아직 주변으로 퍼지지 않은 상태로, '0기 췌장암'이라고도 불린다. 이 단계에서부터 식별이 되면 조기 치료가 중요한 췌장암의 생존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이 이 검사가 특히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 대상은 가족력이나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 췌장에 물혹(낭종)이 있거나 만성 췌장염을 앓는 사람들이다. 건강한 사람만이 아니라 이런 실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성능을 확인했다는 점이 기존 연구와 구별된다. 지금 이들은 대개 영상검사 등으로 정기 검진을 받는데, 몸에 부담을 주고 비용이 많이 들면서도 작은 병변은 놓치기 쉽다. 혈액검사로 먼저 위험이 높은 사람을 골라내면, 정밀검사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검사를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팬시온은 아직 연구 단계의 검사법으로, 연구팀은 기존 검사를 대체하기보다 고위험 환자를 선별하는 보조 도구로 쓰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구를 이끈 아제이 고엘(ajay goel) 시티오브호프 분자진단∙실험치료학과장은 "췌장암은 치료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기 시작한 뒤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치명적"이라며 "이번 결과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 더 많은 치료 선택지가 남아 있을 때 췌장암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간 진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병기를 앞당기는 것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일찍 발견할수록 의미 있는 치료가 가능할 확률이 커진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liquid biopsy for early detection of pancreatic ductal adenocarcinoma: 췌장 선암 조기 발견을 위한 액체생검)는 2026년 9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에 게재됐다.